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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주:김경선]

 

 

 

지리산 둘레길

지리산길은 지리산 둘레 3개도(전북, 전남, 경남), 5개시군(남원, 구례, 하동, 산청, 함양) 16개읍면 80여개 마을을 잇는 300여km의 장거리 도보길이다..지리산길은 어머니의 산, 지리산 둘레를 잇는 길에서 만나는, 자연과 마을, 역사와 문화의 의미를 다시 찾아내 잇고 보듬는 길이며, 한 땀 한 땀 수놓듯 이어가는 지리산길을 통해 속도의 문화를 느림과 성찰의 문화로, 위로만 오르는 수직의 문화를 눈높이 맞추는 수평의 문화로 전환하고자 만들어진 길이다.

'동강-수철' 구간 정보
거리 : 11.9km
예상시간 : 5시간
난이도 : 중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동강리와 산청군 금서면 수철리를 잇는 12km의 지리산길. 이 구간은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걸으며 산행하는 즐거움을 누리며 걷는 산길로, 4개의 마을을 지나 산청에 이르는 길이다.

구간별 주요 지명 : 동강마을 - 점촌마을 - 방곡마을 - 상사폭포 - 쌍재 - 고동재 - 수철마을

 

 

 

 

청학동

청학동은 하동군 해발800m의 지리산 중턱에 위치해 있으며,삼신봉 남쪽자락으로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지리산 마을로 고운 최치원 선생이 은거하던 곳이다.전설로는 청학이 많이 노닐던 곳이라는 유래를 가진곳으로 예로부터수많은 묵객들이 삼신봉을 중심으로 살기 좋은 곳,즉 이상향을 찾아 나섰던 바로 그런 곳이란 느낌이 들게하는 산세와 물줄기를 가지고 있다.

청학동이란 '푸른 학'이라는 뜻으로 전설에 의하면 청학은 신선이 타고 다니면서 도술부리는 새로서 사람의 몸에 새의부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청학하면 신선을 상징하고 신선하면 청학을 연상시켰다.청학동 사람들은 대부분 논밭에서 식량을 자급하고 양봉과 축산,약초,산나물등을 캐다 팔고 하동장에서 생필품을 구입해 쓰고있다.

이곳 주민들은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흰 한복 차림에 처녀 총각 어른은 머리를 땋아 댕기를 드리고 남자 어른은 상투를 틀고 여자 어른은 쪽지를 지며,한결같이 흰옷 도포를 입고 잊혀진 예생활을 다시 시작하였으며,언젠가는 그 이상의 세상이 여기에 올 것이라는 미래의 약속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다.

청학동 마을에는 서당에서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다. 이 서당에서는 청소년에게 한학과 예절등을 가르쳐주고 있으며,우리의 오랜 옛 생활이 현대와 저만치 거리를 두고 존재하고 있는 곳이다.

 

 

 

 

 

삼성궁

청암면 묵계리에 소재하며 한민족의 영산인 지리산품속깊이 청암면 청학동 산길을 휘돌아 1.5Km가량 걸으면 해발 850m에삼성궁이 자리하고 있다.이삼성궁에 정확한 명칭은 지리산청학선원배달성전삼성궁으로 이 고장출신 강민주(한풀선사)가 1983년에 고조선시대의 소도를 복원,민족의성조인 환인,환웅,단군을 모신 배달민족성전으로 민족의 정통도맥인 선도를 지키고 신선도를 수행하는 민족의 도장으로 자리잡아가고있다.

홈페이지 : http://www.bdsj.or.kr

 

 

 

 

대원사계곡

기암괴석을 감도는 계곡의 옥류소리, 울창한 송림과 활엽수림을 스치는 바람소리, 산새들의 우짖는 소리가 어우러지는, 대자연의 합창을 들을 수 있는 계곡이 대원사계곡이다. 30여리에 이르는 대원사 계곡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중봉과 하봉을 거쳐 쑥밭재와 새재, 왕등재, 밤머리재로 해서웅석봉으로 이어지는 산자락 곳곳에서 발원한 계류가 암석을 다듬으며 흘러내린다.
조그만 샘에서 출발한 물길이 낮은 곳을 향해흐르면서 신밭골과 조개골, 밤밭골로 모여들어 새재와 외곡마을을 지나면서는 수량을 더해 대원사가 있는유평리에서 부터 청정 비구니가 독경으로 세상을 깨우듯 사시사철 쉼없이 흐르는 물소리로 깊은 산중의 정적을 깨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은 대원사계곡을 일컬어 남한제일의 탁족처(濯足處)로 꼽으면서 "너럭바위에 앉아계류에 발을 담그고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먼데하늘을 쳐다보며 인생의 긴 여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수 있다면 이 보다 더한행복이 있으랴" 했다. 행정지명을 따라 유평계곡이라 하지 않고 통상 대원사계곡으로 부르는 연유가 된 대원사 역시수난의 지리산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대원사계곡은 그 골짜기가 깊다보니 변환기 때마다 중요피난처이자 역사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화전민이 있었던 이곳은, 1862년 2월 산청군 단성면에서 시작해 진주로 이어지면서 전국적인 규모로 발전한 농민항쟁에서 부터동학혁명에 이르기 까지변혁에 실패한 사람들끼리 모여 그들만의 세상을 꿈꾸며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
일제시대에는 항일의병의 은신처가 되었고, 6.25 전란에 이어 빨치산이 기승을 부릴 때는 낮에는 반역의 땅이 되고, 밤에는 해방구가 되었다.